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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님의 글입니다. 2018-12-21 Friday (조회:157,댓글:3,추천:5)
(세종,남) 즐거운노래 추억담




때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이었고 6학년을 다녔다.  어느날 학교에서는 단체관람영화를 본다고 했고

제목은 천사의메아리였다.  이 영화 내용은 이렇다  ,  부자집에 10살짜리 딸아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가 키웠다.

이아이가 시한부 인생이라고 몇달뿐 산다고 그러나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결국 병이 낳은다는

이야기이다.



거기에서 리틀엔젤스 어린이합창단이 나왔고 아이랑 같이 부른노래가 즐거운 노래였다.  이노래의 시작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자 였다.  이노래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인기노래가 되었다.  오후 청소 시간이 시작되면 노래로 시작한다.



세월은 흘렀고 1975년 중학교 2학년시절 당시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을 실시 하였다.  프로그램은 아침마다 명상시간 갖기

(방송실서 스피커를 통해 교사가 명상자료 낭독)  무감독시험실시  건전가요부르기 였다.



건전가요부르기가 학생들에게 인기는 있었다.  1974년도에는 유명한 작곡가(전석환)을 불러 전교생들과 한때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건전가요는 정든그노래  시골농부있는데 그이름빙고  좋아졌네 좋아졌어  잘살아보세 노래의메아리 선구자

꽃동네새동네  등대지기 등등였다.  하기야 그시절 음반테이프에는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나 혹은 군가를 1곡정도 수록 해야

허가를 내준 시기였다.    

음악시간을 통해 배웠고  아침 조회때 종례때 1곡식을 불러야만 했다.  그러던중 어느날 전교 건전가요 부르기 대회를

한다고 했다.  학념별로 지정곡 1곡  자유곡 1곡  2곡을 불어야 했다. 당시  전학년 7반씩 3개반 21개반 이었고  시상은

학년별로 했다.



2학년은 지정곡이 좋아졌네 좋아졌어 였다.  자유곡을 택하여만했고 택한곡이 즐거운노래였다.  이미 초등6학년 시절에

배워겠다.  무리는 없었다.   점수기준이 노래를 얼마나 잘부르냐  그리고 질서있게 입장 퇴장 하느냐등이었다



담암교사는 엄청 노력을 했고 입장을 한명씩 천천히 걸어서 입장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노래 연습도 했다

드디어 시합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연설등 심사위원을 보니 비담임교사들이었다.



  1학년부터 시작했고  저마다 뽐냈다.  2학년 우리반은 7반이라 늦게 불렀다.  중간의 반은 자유곡

을 잘살아보세로 택했는데 2학생이 큰소리로 첫가사인 잘살아보세 2마디를 불렀다.  드디어 우리반 담임교사가 하는데로

움직여 무대에 올라갔고 (당시 강당도 없고 무대라기 보다  운동장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계단) 지정곡과 자유곡을

불렀다.   내려왔고 3학년들이 불렀다.  



심사발표 2학년에서 1등은 앞에 언급한 잘살아보세 부른반이 1등 우리반이 2등 옆반이 3등이었다

상품으로는  대자리  국화 화분  2개를 받았다  1등은 3개 3등은 1개였다



즐거운노래 이노래랑 질긴인연(?)이 되었다.  가끔은 혼자서 불러본다.  인터넷에 뒤져봐도 가사는 나오는데 음이 없다

거의 모르는 노래라고 보아야한다. 물론 다른 건전가요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노래를 적어본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자 아름다운 노래를 이마을 저마을 울리게 너도나도 부르자

기쁨도 슬픔도 노래에 실고서 희망의 샘터로 달음질쳐 나가자

즐겁게 노래를 부르자 손뼉을 치면서 짝짝짝 이마을 저마을 울리게 너도나도 부르자 .





        


삼사일언 (2018-12-21 Friday) 추천(댓글 기여도) : 2  
(강원,남) 예전 중학생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일요일이면 애향단(동네)별로 새벽 대청소를 실시하여야 했고,
농번기때는 보리베기 등 봉사를 하고.
실습지가 많았던 시골학교인 관계로 여름방학 때는 1인당 50kg이상의 퇴비를 베어 내야만 했던(현직에 들어와서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고, 시켜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일들이 그저 하나의 아련한 추억이 되었네요.
대둔산수락맨 (2018-12-25 Tuesday) 추천(댓글 기여도) : 0  
(충남,남)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신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있으면 50대가 되지만 옛날을 추억해보면 이런일이 있었지
수준이지 자세히 어떻게 누가 무엇을 6하원칙으로 기억하기가 어렵네요
기억력 유지하기 연습을 시작해야 할까요. 하여튼 부럽습니다.
미리네 (2018-12-25 Tuesday) 추천(댓글 기여도) : 0  
(경북,여) 1973년 초등1학년 입학하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엄마 손 잡고 학교에 갔는데 넘 추워 귀가 얼 정도로 눈물이 핑돌았던 기억이. 학교 주변 민가에 들어가 따뜻한 방에 앉았던 기억. 그 엄동설한 추위가 이젠 온난화로 겨울이 겨울 같지않은 날이 되었어요. 빨래방망이가 얼어붙고 처마에 고드름이 날카로운 창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던 그 엄동설한이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어요. 초등때 받아쓰기를 너무 자주했고 선생이 날마다 아이들을 무거운 몽둥이로 틀린 숫자만큰 때렸던 무서운 기억도 스멀스멀 솟아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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